서울 불광동의 <절>에서 도를 닦으며 중생을 제도하고 있는, 세속 나이 72세의 선선 스님이 유월 초순의 어느 날 오후, 반승반속인인 나를 나의 남쪽 바닷가 작가실인 해산토굴로 찾아왔다.
<절>은 한반도 안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불제자(스님)들이 기거하며 도를 닦는 사찰(도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절>은 <데라>라는 팔리어에서 유래한 말로, 한자로 도장(道場)이라 쓰고 <도량이라 읽는 것>도 같은 어원이다. 팔리어는 고대의 인도 지방에서 사용되던 말인데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사용하던 말인 것이고,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에 <데라>라는 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절이 있던 자리에 붙박혀 있다. 전남 장흥군 관산읍내의 5일마다 서는 장마당을 <데르장>이라 했었다. 관산읍은 명산인 천관산 아래 있는데, 천관산에는 고려왕조 시대(불교 전성기)에 145개쯤의 절과 암자가 있었던 산이다. 관산읍 5일 장은 각 사암의 스님들이 모여드는 까닭에 <데르장> 말하자면 <절 스님들의 장>이라 불렸던 것이다. 장흥읍 안양면 율산 마을 옆에는 <데릿골>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예전에 절이 있던 골짜기인 것이다. 장흥군 유치면에는 마을이 별로 크지 않지만 <대리>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것은 절이 있는 골짝에 있는 마을이어서 <데리, 대리>라 불리다가 아예 <대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고유의 인사법, 두 손 짚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하는 방법을 <절>이라고 말하는데, 그 우리 전통의 인사방법은 불교의 절(사찰)이 들어오고 나서, 불제자들이 절하는 법을 따라 한 것에서 유래했던 것이다.
불광동에 있는 <절>의 선선스님은 하나의 역사나 신화나 전설 속의 인물 <밥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내 앞에 들이밀었다. 아니 <밥 할머니>를 내게 안겨주었다.
내가 <밥 할머니를 내게 안겨 주었다> <내 앞에 들이밀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내가 그 <밥 할머니>의 관세음보살처럼 위대한 황금빛 자비로운 품에 안긴 것이다. 밥 할머니는 제주도 설화 속의 <만덕 할머니>처럼 자비로운 큰 인물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결핍을 느끼는, 불완전의 고독한 존재이다. 그 결핍이 있는 한 불만족에 시달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시달리는 한 굶주림과 갈등과 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결핍은 배고픔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은 어린 시절의 젖배 곯음에서 비롯된다. 그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자비와 안식과 평화의 밥이다.
밥은 인간이 태어나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그것 대신 먹고 생명줄을 양생하는 성스럽고 숭엄한 것이다. 밥에는 원초적인 사랑과 보시와 화합의 자비의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밥이 궁핍하던 시대에는 밥을 많이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그 시대에는 많이 가진 자가 밥을 베풀었다. 그 베풂을 통해 세상을 평등하게 하고 화합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오게 했다. 그것은 세상을 다사롭게 품어주는 부처님의 자비희사 같은 자비로움이다.
그 무엇이 밥처럼 위대할 수가 있는가. 인간은 밥을 얻기 위해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 투쟁한다. 광주 시민들이 1980년 5월에 무장군인들의 잔인한 폭압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은 그 위대하고 성스러운 밥을 자유롭게 먹기 위해 주먹밥을 먹어가면서 투쟁했다.
개다리소반의 기억
부엌의 살강 위에는 검은 옻칠을 한 개다리소반 하나가 놓여있고, 그 옆에는 투박한 분청사기 밥그릇 두 개와 국그릇 두 개와 반찬용 접시 넷, 숟가락 둘과 젓가락 네 짝이 있었는데, 평소에 가족들이 사용하지 않았고, 가끔 부리는 놉(인부)들을 위해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개다리소반에 대하여 어머니가 말했다.
17세에 시집와서 부엌일을 익히기 시작한 어머니는 그것들이 궁금했지만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었는데, 어느 늦은 봄날 아침에야 그 궁금증이 풀렸다. 식구들이 모두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구중중한 헤진 옷에 머리 쑥대 같이 부수수한 젊은 남자가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고, 지팡이를 짚어가며, 바야흐로 떠오르는 해를 등진 채 사립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허름한 바가지 하나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안방 툇마루에서 밥을 먹고 있던 시할머니가 그를 보자마자 “어서 오시게. 얼마나 시장하신가.”하고 나서 부엌의 어머니(손자며느리)에게 말했다.
“새악아, 저 양반 사랑방 툇마루로 모시고 밥상 차려 드려라. 살강 위에 있는 소반에다가 깨끗하게 차려라. 소반 옆에 있는 밥그릇이랑 국그릇이랑 숟가락이랑, 그것들 내려서 차려 드려라.” 어머니가 그 남자를 사랑방 툇마루로 모시자, 그는 지팡이를 기둥에 기대놓고 툇마루에 올라앉았다. 어머니는 부엌 살강 위의 소반, 밥그릇 국그릇 따위를 이용해서 밥상을 차렸다. 밥이 부족하였으므로 어머니는 자기가 먹던 밥을 퍼서 그릇을 채웠다. 밥상을 들어다가 사랑방 툇마루에 놓아주자, 그 남자는 달게 빠른 속도로 먹었다. 국 한 모금, 밥알 한 개, 김치나 깍두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다. 이날 아침 어머니는 누룽지를 긁어서 배를 채워야 했다. 어머니가 숭늉을 떠서 들고 가자, 그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며 사립으로 나가고 있었다. 개다리소반을 들고 부엌으로 오자 시할머니가 물었다. “그 양반 숭늉이랑 다 마시고 가셨냐?”
어머니가 “숭늉 들고 가니께 벌써 사립으로 나가셔 버렸어요.”하고 대답하자 시할머니가 바야흐로 밥상을 물리고 있는 텁석부리 머슴을 향해 “만석아 싸게 가서 그 양반 모시고 오너라.”하고 말했다. 만석이 골목길로 달려 나가서 구중중한 행색의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그는 어리둥절한 채 만석의 뒤를 따라왔다. 시할머니가 그를 향해 “이 사람아, 밥을 먹었으면 숭늉을 마시고 가야지.”하고 어머니에게 “어서 숭늉 가져다 드려라.”하고 명했다. 숭늉을 마시고 난 그는 시할머니를 향해 몇 번이든지 굽실굽실 절을 하고 사립 밖으로 나갔다. 시할머니가 그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밥 얻어먹을 데 없으면 언제든지 오소.”하고 짠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고 나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소반하고 밥그릇 국그릇 깨끗하게 씻어 살강 위에 다시 올려놓아라.”
시할머니는 구걸하러 온 거지들을 거지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들이 올 때면 언제나,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바가지에 밥을 담아주지 못하게 하고, 살강 위의 소반과 밥그릇과 국그릇을 사용하게 했다.
밥의 숭엄함에 대하여
“사람은 하늘 무서워할 줄을 알아야 한다.”하고 어린 시절 나의 할아버지는 나에게 가르치셨다. “하늘 조심하듯이 밥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일꾼들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성인이 ‘밥이 하늘(식이천食而天)’*이라고 말씀하셨다. 밥을 성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않아야 한다. 밥 만드는 일이 성스러운 것이다.
사람은 밥값을 하고 살아야 한다. 농부는 농사 잘 짓는 일이 밥값이고, 어부는 고기 잘 잡는 일이 밥값이고, 머슴은 주인집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밥값이고, 의사는 병 고치는 일이 밥값이고,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것이 밥값이고, 웃어른께 효도하는 것이 밥값이고, 임금은 백성을 가엾게 여기고 잘 다스리는 것이 밥값이고, 벼슬아치는 못 사는 백성들을 살피고 도와주고 청렴하게 사는 것이 밥값이다. 스님은 도를 닦고 깨달은 바를 아직 못 깨달은 중생들에게 되돌려주고(회향) 그들을 제도하는 것이 밥값이다. 시인 소설가는 자기가 쓴 시나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참 삶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밥값이다.
밥에는 저항정신과 더불어 자유 민주와 평화가 들어 있다. 그것을 위하여 뜻있는 여성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공급했던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한 절의 노약해진 고명한 스님이 날마다 남새밭에서 김을 매고 벌레를 잡고 그러는 것을 안타까워한 젊은 시자들이 호미와 괭이와 삽을 감추어버렸는데, 일을 하지 못한 노스님은 그날 낮에 공양을 하지 않고 굶었다. 오후에 시자가 감추었던 연장을 모두 내드리자 밭일을 한 다음에는 저녁 공양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인간은 자기 몸무게로 세상을 누르고 있는 만큼 밥값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노스님은 생각하는 것이고 일 속에 깨달음의 삶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이다.
그 노스님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한 적이 있었다. 신성한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므로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세상에는 진자리가 있고 마른자리가 있다. 사람들은 진자리에서 하는 일을 피하려 하고 마른자리에서 하는 일을 선호한다. 진자리에서 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밥값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밥은 성스러우면서도 포도청처럼 엄혹한 것이다.
밥 할머니
<밥>은 하늘의 뜻이다. 그것은 자비의 불교 실천의 태두인 보시의 가장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사람이 곧 한울님(人乃天)이라고 했다. 사람은 성스러운 <밥>을 먹고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는 존재이다. 대한민국의 서울 불광동에 <밥 할머니>라 칭송되는 여인이 있었다.
이 지역의 이름 불광동은 “부처님의 자비희사의 빛이 비치는 지역”이므로 <불광동>이라고 붙여졌다. 불광동 지역에 그 이름을 존속하게 하는 역사 속의 큰 인물이 있는데, 다름 아닌 <밥 할머니>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 임금이 서울을 버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혼자서만 살아 중국으로 달아나려는 것이었다. 왜군의 병화로 관리들이 모두 도망가고, 행정이 마비되었을 때, 가난한 백성들이 굶주림과 고난에 빠졌다. 그 상황에서 자기 집의 창고를 과감히 열고 곡식을 풀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한 관세음보살 같은 여인이 <밥 할머니>였다. 밀양 박씨 집안에 태어나 문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여인이었다.
그 이후, 성실한 불제자였던 이 여인은 승군을 이끄는 서산대사(휴정 스님)를 돕기 위해, 많은 여인들을 이끌고 권율 장군이 분전하는 행주산성으로 가서 석전을 위한 돌멩이를 앞치마로 주워 나른 큰일을 했고, 분투하는 의군을 위해 주먹밥을 제공했던 것이다.
가히 구원의 여인이었다.
불광동의 절(주지 선선 스님)은 그 구원의 여인 <밥 할머니>를 기리기 위하여 <밥 할머니 공양간>을 운영한다. 밥 할머니의 높은 뜻은 중생 사랑과 자비와 평화에 있다. 그 밥 할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헌신하는 선선 스님의 <불광동 밥 할머니 공양간>의 보살행을 돕는 마음으로 삼가 이 글을 쓴다.
해산(海山) 한승원 선생님 특별 찬 기고문(特別讚寄稿文)을 밥 할머니 전에 삼가 헌정합니다.